2018-07-30

생물학을 좀 더 재미있게 다루는 분이 있다.

이 분의 블로그는 여기이다.

35 년 전에 생화학 중간고사를 쳤다는 것은, 현재는 최소 55세 정도 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게다가 글의 카테고리도 '나의 기초의학 공부'다. 확실히 대학용 생물학의 기초는 맞긴 하지만, 그 기초라는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대학생과는 사뭇 다르게 독특하셔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얼마전에 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의대 교수님을 뵙고 왔다. 그 분의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끝없이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보다도 10 배는 더 책을 보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뿐만아니라, 그것들을 실천해보고 경험한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교수'하는 사람들이었다.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연륜이 묻어나온 이유는 그것들을 정말로 해보고 나서 깨달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분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계신다. 그 의대 교수님도 초등학생 생물교양서에나 나올법한 '균형잡힌 식생활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잠시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근거는 그 분이 평생 공부하셨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저 단순히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처럼 '고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을 다른 학자들에게 전문성있게 제시해주는 것이 교수님들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학계의 부모님 노릇 다만 그런 것들을 잔소리 수준에서 설파하는게 아니라, 뭔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를 툭툭 던지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하는 영감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저 블로그의 주인장님도 그런 독특한 시선으로 대학 생물학을 바라보고 있으셨다. 나도 Stryer의 생화학을 조금, 아주 조금 공부했는데, 딱히 헤모글로빈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유를 생각해보진 않았었다. 그저 우리 몸 속에 있으니까 공부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였었는데, 블로그 주인장님은 생물의 탄생과 개체로의 진화까지 간단하게 열거하면서 그 사이에 헤모글로빈이 존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도출하고 있었다.
세상에.. 헤모글로빈의 산소포화도 곡선은 '고등학교 생물 I'에서 전부 다루겠지만, 설마 그 곡선으로 '헤모글로빈이 이타성을 가져서 모체로부터 태아까지 산소를 전달하는 것'이라 추측할 것이라는 인간의 관점까지 철학적으로 고민해볼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나같아도 헤모글로빈은 그저 산소를 옮겨주는 노예단백질이라고만 생각하지, 거기에 감정이입까지 할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뿐만 아니라, 생물학의 이모저모를 두루두루 접근하는 그 태도가 사뭇 의대 교수님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전공 분야만이 아니라 이것저것 전부 닿는대로 배우신다. 블로그 링크가 가리키는 게시물의 마지막에서 그 감정을 이입하는 자신에 대한 고찰과 동시에 인공지능과 영화 'Her'까지 나아가고 있다. 확실히 안드로메다까지 갔다.
그런데 옆 오피스의 교수님도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우주의 탄생부터 전자가 돌았잖아? 근데 지금도 돌고 있단 말이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전자란 말이야. 분자들도 결국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생긴 결합체고, 화학반응도 전자를 교환함으로써 일어나잖아? 근데 대체 전자는 왜 돌까? 어떻게 그렇게 돌고 있을까? 전자는 앞으로도 그렇게 돌까?'
할 말을 잃었다. 전자가 왜 도느냐고 물으신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전자는 그냥 돌고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대답하기엔 너무 무책임하고, '에너지를 가졌으니 돌겠죠'라고 대답하기엔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빈약한 대답이 된다. 나도 그게 왜 도는지 딱히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쯤 되다보니 왜 박사 학위를 PhD라고 읽는지 알 것 같았다.

난 지금 석사생이다. 논문들을 읽다보면 한없이 느껴지는 자신의 무지함에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다. 전공책에 나와있던 내용들은 너무나도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내용이었고, 왜 그걸 그 땐 몰랐을까 하며 후회하는 중이다. 실은 처음에 대학 교재를 접했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등 EBS 교재나 학교 교과서는 이렇게나 쉽게 풀어서 써놓았는데 왜 대학용은 이렇게 불친절하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은걸까?'라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젠 좀 눈치가 생긴다. 교과 전공서적으로 나온다는건 그만큼 전공지식을 깔쌈하게 정리해서 책으로 나온 것이란 사실을... 나는 그 이후로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이미 다 읽은 일반생물학을 다시금 속독하곤 한다.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제일 탄탄할테니.
대학원생이어도 목표만큼은 교수님이다. 이렇게나 재미없고 외우는 것 투성이였을 생물학을 만담처럼 다루는 분들이 교수로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믿는다. 연구든 게임이든 공통점이라면, 재미가 있어야 오래 붙들고 늘어질 것 아닌가.

나도 떠들다보니 태양계 바깥까지 나가버린 모양이다. 암튼 재미있는 블로그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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